






송미경 퍼포먼스 잘 가요! 미스터 오웰!
백기영(前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스웨덴의 역사학자이자, 작가, 그리고 음악가인 라스무스 플라이셔(Rasmus Fleischer)는 이플럭스에 기고한 그의 글 「음악이 일어나는 방식: “포스트 디지털 선언문”」에서 ‘우리 일상에서 음악은 이미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특별히 맞춤화된(specially tailored)’ 상태로 발생한다.’라고 했다. 이 현상의 이면에는 우리의 일상적인 구매 정보를 압축해서 도출한 개인의 선호도 데이터가 도사리고 있다. 음악에 대한 일시적인 신체적 관계는 이렇게 “개취(개인의 취향(Personal Taste)”가 되고 무한반복 되면서 변주한다. 그러니까 우리 일상은 음악으로 꽉 차 있지만, 그 사이에서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조차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다른 편에서 보면 음악은 ‘어떤 시간에 특정 공간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잘게 부서진 채로 각자의 취향으로 채워진 꽉 찬 데이터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송미경의 「24시간 동안의 해프닝(feat. 굿바이 미스터 오웰)」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예술로 2천5백만명의 시청 기록을 남긴 백남준의 40년 전 퍼포먼스「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패러디한 종합공연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통해 미디어로 인민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미래상을 보여주었는데, 미디어 낙관론자였던 백남준은 “21세기는 1984년부터 시작된다.”라고 말하면서, “조지 오웰이 틀렸다!”라고 외친 것이다. 1984년이 되던 해 첫날, 백남준은 미국 방송사 데블유엔이티(WNET)의 뉴욕 스튜디오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그리고 한국의 KBS를 위성으로 연결했다. 존 케이지, 머스 커닝햄, 요제프 보이스, 앨런 긴즈버그, 이브 몽탕, 샬럿 무어먼 등 당대 손꼽히는 예술인들의 퍼포먼스가 뒤죽박죽된 이 퍼포먼스는 바그너적인 총체성이 브라운관을 통해서 안방의 시청자들을 강타하는 충격이자 20세기 전위미술의 대표적인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언어 기반의 음악 생성법(기보법)’, ‘구체시(Concrete poetry) 작곡’, 음악, 낭독 그리고 문학(시, 소설)을 실험하고 있는 전위실험음악 작곡 및 기획자 송미경의 이번 공연의 발단은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던 2020년 11월 9일 프랑스로 넘어가는 에어 프랑스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베를린 테겔 공항이 폐쇄되었던 시기로 돌아간다. 송미경은 이 시기에 「하얀집(White House)」이라는 제목의 60페이지 분량의 책을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출판하게 되는데, 이 책에는 영어, 독일어, 한글의 자음과 모음, 특수문자, 숫자, 악보처럼 복잡한 부호들이 뒤섞여 있다. 1인 출판사로 작가가 운영하는 ‘노메이드 랩’의 이름처럼, ‘어떤 것도 만들어지지 않는(no made)’을 표방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정확하게 말하면, 책이라기보다는 악보에 가깝다. 작가가 상정하고 있는 「하얀집」은 그러니까 검은 활자와 부호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그 프로젝트가 있고 난 2023년 6월, 송미경은 서울국제도서전에 두 번째 책으로 큐브 형식이고 1,038페이지 분량의 「검은집BLACK HOUSE」을 출판하여 소개하였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봉쇄된 독일 베를린에서 2020년 4월부터 585일 동안 매일 밤 10시 자신 방 반대편 빌딩 거주자를 관찰해 사진과 영상 그리고 이 이미지에 떠오르는 글과 숫자들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이 책은 ‘585일의 시간 덩어리’이자 작가가 거주했던 아파트 공간을 책 크기의 부피로 축소한 ‘공간 덩어리’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은 공간으로 접히거나 차곡차곡 쌓인다. 현대물리학이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자연스럽게 시공간의 추상적 세계를 물질화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하얀집」과 「검은집」은 서로 짝을 이룬다. 「하얀집」이 글과 문자 그리고 부호를 시공간의 흐름에 부유하는 물리적 실체로 주목하는 것처럼, 「검은집」은 코로나 기간에 아파트 창 너머로 부유하던 풍경과 상념들을 물리적으로 실체화한다.
이렇게 문자와 활자 그리고 부호를 악보의 형태로 보고 그 추상적인 요소들을 담아 시공간의 블랙홀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작가의 실험은 이상의 『날개』나 『처용가』와 같은 문학 텍스트를 공간에 구겨 넣는 식으로 이어졌다. 「빨간집」(2024) 전시(공연)가 열렸던 오뉴월의 이주헌은 오래된 한옥 전시장이다. 그야말로 물리적인 ‘집’이다. 붉은 조명은 공간을 밝히고 있다. 이 「빨간집」은 상징적인 ‘집’으로서의 ‘책’의 실체적 버전이다. 이상의 『날개』와 『처용가』의 텍스트가 색소폰, 피아노, 피리, 발레, 배우의 낭송과 같은 8명의 연주(행위)가 부조리하게 결합하는 공연으로 종합화된 것이다. 여기서 소설은 수학적 원리에 따라 일정한 규칙을 가진 악보로 변환된다.
송미경의 책들은 애초부터 공연으로 구현할 수 있는 악보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다. 독일의 개념미술가 한네 다르보벤(Hanne Darboven)은 임의적인 계열화 방식으로 텍스트를 수치화하고 수학적 원리에 따른 연산 규칙을 적용한 글쓰기 작업을 발전시켰는데, 소설가의 택스트나 특정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패턴으로 번역하면서 거기에 따른 이미지들을 병합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텍스트는 한층 수수께끼처럼 보이고 이미지와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재해석 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런 텍스트의 번역 과정은 숫자로 이루어진 기보를 통한 음악적 구현이 가능한 악보로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한네 다르보벤의 작업이 정교한 숫자 시스템의 구축(물론, 임의적인 규칙을 따르지만)의 토대에서 출발한다면, 송미경은 이 규칙에 연주자들을 얽어매지 않는다. 그녀의 연주자들은 이 악보에서 독립된 존재들이다. 소설의 번안된 선율은 배경음으로 작동하고 불확정적이고 비결정적인 기보 안에서 연주자들은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 작위적이고 즉흥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여기에 악보 읽기 자체가 불가능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를 연주자로 초대하는 이유가 있다. 소설과 공연의 상관관계는 점점 더 추상화되고 흐릿해진다. 연주자들은 종이 위의 공간을 시간으로 번역하는 번역가가 된다. 우리는 이들의 소리를 통해서 물리적으로 현실화된 공간과 시간의 부피를 감각하게 된다. 그 때문에 공연은 언제 어디서든 똑같을 수 없다. 관람객의 ‘투청력(clairandience)’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것처럼 인식하는 능력
에 의존해야 하는 공연은 ‘개취’ 알고리즘을 작동시키기가 무섭게 바로 다른 형식의 소리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디지털 정보의 형태 분류에 근거한 알고리즘은 이런 형식의 음악에 대해서도 ‘취향’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24시간 동안의 해프닝(feat. 굿바이 미스터 오웰)」(2024)이 펼쳐졌던 수원시립미술관의 로비 공간은 매표소로부터 들어오는 입구가 2층 전시실로 오르거나 1층 전시장에 도달하는 경로의 중간에 있다. 연주자나 무용가가 이 교차로에서 연주하게 되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이곳에 몰린다. 소리가 여러 공간으로 나뉘어 퍼져 나갔다가 돌아오기 때문에, 청각에 예민한 사람은 이 입체적인 공간음 때문에 산만해질 수 있다. 송미경의 「24시간 동안의 해프닝」은 미술관이 개관하는 동안 현장과 유럽의 연주자들을 연결해서 진행된 글로벌 네트워크 음악공연이다. 백남준이 ‘굿 모닝!’이라고 조지 오웰에게 인사했다면, 송미경은 ‘굿 바이!’하고 작별을 고한다. 백남준은 1984년을 ‘좋은 아침’으로 받아들였다면, 송미경은 ‘이제는 헤어질 시간’으로 인식한다. 이 역사적인 퍼포먼스의 40년 후를 살고 있는 우리는 백남준이 엄청난 돈을 들여 방송국의 협조를 얻어내지 않더라도 손쉽게 인터넷이 있는 세계 어떤 곳이든 연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작가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서 백남준의 유쾌한 유머로 대처하기엔 점점 더 통제와 감시가 쉬워진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코로나를 겪으면서 인류가 경험했던 세계는 정말로 조지 오웰이 염려하던 시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있다.